남동생의 봄과 결혼식

 4월 첫째 주에는 남동생이 한국에서 결혼식을 했다. 나와 헨리는 날짜 맞춰 한국에 갈까 했지만 아직 헨리의 여권도 준비하지 않았고 2주간의 격리를 감안한 출국 준비는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 한국행을 포기했다. 가족과 오랜 대화 끝에 상황을 더 살펴 가을쯤에 가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가을쯤 되면 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그런데 막상 결혼식 당일이 되니 기분이 묘하더라. 아이는 자고 남편도 없는 그날 밤, 나는 혼자 조용히 와인을 마셨다. 가게에서 준비를 하고 있던 동생이 영상전화를 걸었다. 웃으며 멋있다고 칭찬했지만 왠지 울컥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휴대전화가 없는 손으로 쓸데없이 소매만 만지작거렸다. 내가 결정한 일이지만, 공연히 아쉬워서 속상한 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와인을 마신다고 올렸더니 동생의 절친한 친구이자 내가 아끼는 동생이 DM을 보내왔다. 안 그래도 언니가 생각났다고 영상과 짤을 찍어서 보내준다고 나는 힘들지 않으면 부탁한다고 대답했다. 고마운 녀석

나는 두 잔의 와인잔으로 붉어진 얼굴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일찍 자려고 했는데도 전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오랜 시간 뒤척였다. 그래서 다음날 일어나 보려던 동생의 영상과 사진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고 있었다. 미군 제복 입은 모습은 실제로 본 적이 없지만 결혼식에 입으니 왠지 더 멋있어 보였다. 오랜만에 화장하고 곱게 차려입은 우리 엄마도 참 예쁘고, 아들 결혼식이라고 큰맘 먹고 염색하신 우리 아빠도 예쁘시고. 그리고 우리 가족이 된 올케도 너무 예쁘고

괜히 손으로 화면을 쓰다듬었다.3월말이 되자 날씨는 봄처럼 좋았다. 하늘은 파랗고 짙푸른 색으로 도시 곳곳에 봄꽃들이 심기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남편이 집에서 일을 하지만 가끔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고 동네 산책을 했다. 아침식사를 하면 "You wannago supermarket?" 헨리의 조청이 있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한다. 매일 놀이터에서 땀을 흘릴 정도로 뛰어다녀야 하는데 그게 안 돼 불쌍하다. 그래서 헨리는 밖에 나가면 아주 신나 보인다. 가끔은 슈퍼마켓만 다녀오는데 아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특히 홀푸드와 과일, 야채섹션에서는 헨리가 즐겨 찾는 곳이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tomato', 'banana', '애플', 'sweet potato'를 외친다. 어릴 적부터 슈퍼에 데리고 가서 여러 가지를 보여 주었더니, 아이는 쇼핑이 놀이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쇼핑 시간이 길어지면 가끔 짜증을 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5분 정도 유아 영상을 틀 때도 있다. 아이가 짜증을 내는 것에 놀라 허둥대다 보면 정작 필요한 것을 빼고는 안 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허드슨 야드에 위치한 홀푸드는 아파트와 연결된 건물에 있으며 2층 입구에 작은 광장이 있다. 아직 공사 중이라 일부러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지만 헨리는 올 때마다 이곳을 뛰어다니며 기뻐하고 있다. 탐스럽게 핀 꽃나무도 구경하고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아이. 동양인 혐오 사고로 언론이 떠들썩하지만 이처럼 아이와의 눈맞춤에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좋은 사람도 많다. 이처럼 모두가 남에게 좀 더 관용을 베풀 수는 없을까.
나부터라도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가 거주하는 빌딩 루프탑도 벚꽃이 예쁘게 피었다. 겨우내 앙상한 나무에 예쁜 새싹이 돋아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벚꽃은 곧 만발할 꽃이라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나는 매일같이 아이를 데리고 루프탑에 올랐다. 헨리는 아직 큰 나무에는 관심이 없지만 정원에 심어진 작은 꽃과 풀을 좋아한다. 서투르지만 조심스레 손을 대려는 아이의 움직임에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Henry loves tree. Henry loves 풀'이라는 아이.
아이가 낮잠을 자고 남편이 거실에서 일할 때 나도 책을 들고 루프탑에 올랐다. 요즘 읽고 있는 언어학 관련 책인데 너무 재미있어서 아껴서 읽고 있어. 저자는 미국 남부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일했고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스위스 제네바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경험하는 잔잔한 에피소드를 담은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읽을수록 상당히 심도 있는 언어학적 고찰이 담겨 있어 많이 배워서 한 장 한 장 읽는다. 언어가 사람의 사고방식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주변에 외국에 거주하시는 분, 이중언어를 사용하시는 분이나 언어와 통역관계 일을 하시는 분들을 꼭 추천하고 싶다.
책 제목 : 러브 인 프렌치 (로랑 콜린스 지음)
읽는 내내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 욕구에 빠져 있었다. 사실 프랑스어 문법책 한 권을 사 두었는데도 자꾸 손이 안 가. 새로운 언어 습득은 아마 일생에 걸쳐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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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이번주는 비가 계속 내린다. 아직 센트럴 파크에는 가지 않았지만, 올해 벚꽃은 이쯤에서 질 것 같다. 뉴욕의 겨울은 꼬리가 길기 때문에 4월 말이 돼도 패딩을 입어야 하니 옷장 정리도 아직 멀었다. 아무래도 올해도 봄은 천천히 와서 약간 엇갈리는 것 같아.
그래도 마음은 설렌다. 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생명력이 그 이유다. 다행히 가족들이 아직 건강하고 육아는 조금 여유가 있어서 나는 오후에 책도 읽고 육아휴직을 하면 BTS의 달려라 방탄을 보며 킬킬거리는 밤을 보내곤 한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책 요시모토 바나나의 하치의 마지막 애인 구절이 떠오른다.
'어느새 유유히 흐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이길'

우리 모두는 이 고난의 시간 속에서 조용히 흘러 멋진 곳으로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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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그램을 더 자주해요 @alaina_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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